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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스토리 [Story] K2 X WWF 어스키퍼: 캄차카원정대 이야기1
20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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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하늘이 예쁠 때, 공기가 상쾌할 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어서 괜히 설레는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자연이 주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 말이에요.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예쁜 풍경을 놓칠세라 사진에 담아놓으려고 얼른 휴대폰을 꺼내다 보면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습니다. ‘저 건물이 없다면, 전선이랑 전봇대가 없다면, 더 탁 트인 곳이면 훨씬 예쁠 텐데.’온전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저는 화려한 도시 불빛보다 자연 풍경에 더 큰 감흥을 느끼는 편입니다. 조금 불편해도 더 많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도시가 복잡한 거대 도시보다 좋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캄차카 반도는 신비한 매력이 가득한 곳, 사진만 봐도 설레는 곳. 심장을 뛰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원정대에 최종 합격했을 때 너무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아 ‘말도 안 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많지 않아 날씨조차 가늠할 수 없는 신비의 땅. 저는 궁금증과 설렘을 가득 안고 캄차카 반도로 향했습니다.



캄차카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마주했던 아담하면서도 투박했던 엘리조보 공항의 모습은 통해 이곳이 얼마나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갖추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날 공항을 벗어나 숙소로 가는 길,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묵었던 숙소의 모습은 우리나라 도시 근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잠시 여기가 러시아인지 가평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안구 정화는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는 이튿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WWF가 체험 코스로 개발한 와일드 루트 중 하나인 블루 레이크 국립공원은 등산로도 잘 닦이지 않은 야생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곳곳에는 누군가 일부러 심어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꽃과 식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정상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길을 한참 지나 어느새 물빛이 햇살에 아름답게 부서지는 블루 레이크 정상에 다다르자 산을 오를 때의 고단함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점심 도시락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대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카메라에는 절대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며 벅찬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산악 가이드 스테판과 함께>

이 날의 베스트는 저 멀리 나타났던 곰이었는데요. 캄차카에 와서 처음 보았던 곰이기에 귀엽다는 말을 연신 외쳐대며 구경했습니다. 어서 하산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재촉에 단체 사진도 못 남긴 채 내려오다 곰의 따끈따끈한 응가도 보고. 긴장과 웃음이 묘하게 함께 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날 10시간이나 지속된 산행의 고단함을 아셨는지 셋째 날은 헬기 투어로 쿠릴 호수를 찾아갔습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떠오르게 하는 웅장한 활화산들이 쿠릴 호수의 주변을 지켜 주었고 야생 불곰들은 귀여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_< 날씨 때문에 활화산 지역을 방문하지 못하고 바로 온천으로 행했는데, 익숙하게 보던 네모난 틀 속 인공 온천이 대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수 같은 온천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곧 익숙해져 대원들과 수영 대결도 하고 사진도 남기며 전 날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아바친스키 산을 들다>

캄차카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가서 정말 원정대의 느낌을 제대로 받았던 넷째 날. 화산 등반은 개인적으로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몇 년 전 겨울, 빙판길에 다리가 부러진 이후 미끄러운 바닥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빠르게 걷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바친스카야 화산은 눈이 있는 곳은 눈이 있어서 미끄럽고, 눈이 없는 곳은 활화산의 잔재가 있어서 그런지 발을 딛는 곳마다 힘없이 발이 푹푹 빠지고 계속 미끄러졌습니다. 넘어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두 다리에 힘을 꾹꾹 주고 걷다 보니 중반 이후부터는 허벅지도 너무 아프고 휴식시간에 사진 찍을 기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뒤로 격려해주는 원정대원들과 산을 오르다 뒤돌면 보이는 멋진 장관에 피로도 씻겨 내려가고, 혼자라면 반도 못 갔을 거리를 올랐습니다. 대원들과 풍경을 간식 삼아 수다도 떨고 구름 위 신선놀음도 즐기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고 자연썰매장에서 썰매를 타고 하산했던 모든 경험은 오랫동안 선명하게 기억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막상 활동해보니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졌던 캄차카 원정대 활동. 누구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자연 속의 매일매일 웃으며 보낼 수 있도록 함께해준 대원들 덕분에 더욱 풍성하게 캄차카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오감만족’이라는 단어가 너무 잘 어울렸던 캄차카! 


<마지막 밤, 대원들과 함께>

보기만 해도 너무 좋아서 벅차오르고 뭉클했던 대자연 앞에서 어렸을 적 누렸던 깨끗한 공기, 맑은 자연 속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1년의 반 이상은 황사나 미세먼지로 창문도 못 열고 실내에서 답답하게 지내는 요즘 아이들을 떠올려보니 너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인간의 손으로는 절대 재현해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누릴 수 있도록 대대손손 잘 물려주고 싶어 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여정이었습니다.


캄차카 원정대를 떠나기 전에도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종이 핸드타월 대신 천으로 된 손수건을 사용하고 등산할 때에는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은 주워서 돌아오곤 했는데 캄차카를 다녀온 후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고 하나씩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플라스틱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빨대를, 샴푸 대신 샴푸바를 사용하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더 계기가 되었던 평생 잊을 수 없을 캄차카 원정대. 진정한 어스 키퍼(earth keeper)가 되어 주변 지인들에게 지구를 지키는 꿀팁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K2와 WWF 너무 감사드립니다.

K2 X WWF 어스키퍼 소선아